국립 발레단 백조의 호수 (2009. 12.9~13): 세대 교체의 시작

국립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이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12월의 백조라 더욱 색달랐던 경험이었는데요...예전 버전을 그대로 사용한 이번 백조의 호수를 따로 작품 분석을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화제가 되었던 캐스팅에 대한 내용 위주로 이야기를 해봅니다. 발표 당시부터 이미 팬들의 원성 아닌 원성을 자아냈던 이번 공연. 특이하게도 기존 주역의 비중을 줄이고 새얼굴들을 전면에 배치하였죠. 그리고 지금 반응들을 보면 시도는 성공이라고 평가할수 있습니다. 세대 교체의 신호탄일까요? 10일(김기민, 박세은), 12일(김지영, 정영재), 13일(고혜주, 김현웅) 공연을 보았습니다. 


박슬기는 올해 서울 국제 콩쿠르에서 처음 본 무용수였습니다. (당시 금상) 그때까지 몰랐던게 신기했을 정도로 깔끔하고 단단한 춤을 추더군요. 이번 백조의 파드 뜨로와나 스페인 공주역에서도 역시 반짝 반짝 빛나는 춤을 보여주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때문에 주역으로 나온 금요일 공연을 못본것이 계속 아쉬운 생각이 드네요.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은 박세은 못지않은 테크니션으로 보입니다. 내년 백조에서 꼭 다시 보고 싶은 무용수로 일단 며칠후 호두에서 미리 만나 봅니다.


박세은은 유명세만큼 화려한 테크닉을 선보였습니다. 흑조에서 본인의 장점인 날렵한 움직임, 테크니컬한 훼떼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 샤방한 외모와 완벽한 신체 비율이 더해져 스타는 역시 스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조 아다지오는 현재 박세은의 춤색깔, 파트너와의 호흡 문제등이 겹쳐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죠. 김기민과의 흑조에서의 화려했던 댄스 배틀은 이번 6번의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손 꼽히는 명장면이었습니다.


고혜주는 요즘 추세인 테크니션 계열은 아니지만 음악을 깊게 쓰면서 여운있는 움직임으로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무용수입니다. 백조에서는 음악발을 못받아서 특유의 표현력을 마음껏 살리지 못했고 잔실수가 눈에 종종 띄었지만 나름 선방한 모습. 흑조는 이번에 처음 보았는데 테크닉보다는 역시 본인의 장점을 살린 표현력으로 요염한 흑조의 분위기를 제법 살린 모습이었습니다. 올라운더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본인의 장점을 잘살리는 무용수가 되길 바랍니다. (오히려 고혜주의 재능은 요즘 더 찾기 힘든 종류의 것이니까요)

김리회는 이번에 플루로 출연이 취소되었죠. 같이 캐스팅 되었던 장운규 역시 부상으로 교체되었으니 원래 캐스팅이 다 바뀐 셈인데 정영재와 김지영이 두사람을 대신하였습니다. 김주원의 경우엔 12일 공연이 서울 사이버대학교쪽에서 쓸어가버린 덕에 이 공연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군요.

김지영은 말이 필요없는 베테랑에 국립의 얼굴이죠. 첫날은 보지 않았고 대타로 나온 12일 공연을 보았는데 발란스나 그랑 바뜨망등 발목업 자세를 잘 버티지 못하고 평소보다 백조때 움직임이 부드럽길래 이상해서 확인해보니 감기에 발부상이더군요. 흑조에서도 그녀 답지않게 회전이나 훼떼 자세가 불안했는데 그외의 모습은 오히려 흑조다운 기세가 잘 느껴졌습니다. 부상등으로 신체의 능력은 다 발휘하지 못하였지만 고통을 극복하고 오히려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준것 같습니다.

김주원, 김지영, 윤혜진(장기 부상중)의 주역진이 몇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올해 백조에서 주역으로 데뷔한 새얼굴들이 심상치가 않네요. 팬들 입장에서는 아주 신나는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남자 무용수는 이번에 이동훈, 김기민이 데뷔 예정이었는데 이동훈의 신종 플루 감염으로 인해 그자리를 김현웅이 메꾸었고 장운규의 공석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정영재가 대신 하였습니다.

정영재는 영국 국립발레단 출신으로 올해 주로 솔리스트로 활약한 무용수입니다. 12일 김지영과 호흡을 맞추었는데 공연중 이렇다할 본인의 장점을 보여주지는 못하였습니다. 대타 캐스팅인만큼 잔실수들은 어쩔수 없지만 왕자로서의 우아함이나 존재감이 부족했습니다. 큰 실수 없이 전막 공연을 끝까지 해냈다는데 의의를 둬야 할듯 합니다. 호두에서는 김리회와 호흡을 맞추는데 호두를 먼저 거친후 백조를 하는 것이 더 좋았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김기민. 이번 공연이 낳은 최고의 센세이션. 18세 천재소년에게 이미 한국은 너무 좁습니다. 사실 김기민의 춤은 나름 많이 본편이라 자부하는데도 전막에서 보여준 그의 존재감과 포스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작년까지만해도 노예(해적), 이발사(돈키호테)등의 천한 신분만 전전했는데 올해 왕자로 신분 상승한후 춤동작 하나 하나에서 우아함이 배어납니다. 시원한 점프와 가벼운 착지, 팽이같은 회전과 견고한 발란스. 테크닉에 관한한 이미 적수가 없습니다. 몇년후 체격과 근력이 향상되고 표현이 원숙해질 그의 모습을 기대하면서도 과연 국내에서 볼수 있을까 하는 걱정아닌 걱정을 하게 됩니다. 파트너와의 호흡, 서포팅등 이번 공연에서 노출한 문제는 성장세를 보았을때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듯 합니다.

김현웅은 좀 아쉬웠습니다. 막공에서 고혜주와의 춤을 보았는데 몸을 많이 아끼더군요. 공연 스케줄 관련해서 발레단외의 일정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관객 입장에선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실수를 줄인 춤이라해도 김이 빠져보이는 춤은 보고 싶지 않은것이 팬의 마음이지요.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 차이코프스키와 왕자호동으로 다시 기대를 가졌는데...차라리 어디 아프거나 부상때문이라는 이야길 듣게 된다면 안심(?)하겠습니다.

주역은 아니지만 윤전일(한예종 4학년, 인턴)의 광대 데뷔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주역 다음으로 주목받는 춤을 춰야 하는 역으로 고도의 테크닉을 발휘하면서도 코믹한 연기를 공연 중간 중간 보여주어야 하는데 연기와 테크닉 모두 두번째로 본 막공에서 좀 더 안정적이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에서의 왕자-조커에서도 좋은 춤을 보여준만큼 앞으로 기대가 되는 재원입니다. 로트바르트라는 중역을 인턴인 한예종 2학년 이재우가 맡았습니다. 190이 넘는 키에 작은 얼굴, 완벽한 비율로 이미 몸만으로 큰 재능이었던 이재우는 춤과 연기에서는 많이 부족한 모습을 노출했습니다. 유리 버전에서 악마는 특히 비중이 더 큰데 아직은 버거운 역할이었던것 같습니다. 좋은 경험을 한만큼 축복받은 신체를 잘 살린 대형 무용수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음악이 이번에 말이 많았습니다. 구마에로 유명한 구자범 광주시향 수석 지휘자가 코리아심포니를 지휘하였습니다. 밀도 있고 잘 조여진 음색으로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일단 음악만으로 듣기에는 꽤 좋은 점수를 줄수 있겠습니다만 발레 반주로는 당황스럽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겁니다. 바로 앞에서 무용수처럼 격렬하게 움직이며 열심히 지휘하는 모습을 보니 그만큼 자의식과 자부심이 강한 분인듯 한데, 무용수들 생각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상당한 팬을 몰고 다니는 분이고 이도 저도 아닌 이제까지의 반주보다는 나은 퀄리티의 음악이라 호평도 많지만 제 입장에서는 구르기에프... 좀 그렇군요. (실제 공연한 무용수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백조 군무가 예상외로 볼만했습니다. 대체로 국립의 공연을 보면 군무는 대충 그러려니 하고 보는 편인데 이번 군무는 최근 2~3년내 국립의 군무중 최고였던것 같습니다. 실력있는 젊은 피의 수혈로 발레단 전체의 수준이 올라간것이 이런데서도 효과를 발휘한듯 합니다. 발레 블랑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발휘해준것 같아 보면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호두 스노우도 무척 기대되네요.

새로운 시도였던 왕자호동과 크리스마스 고정 레퍼토리 호두사이라는 어정쩡한 스케줄임에도 클래식 발레의 대명사 백조의 호수를 성공적으로 공연해낸 국립 발레단에 박수를 보냅니다.


 


ps...노원 이원국 발레단의 이번 호두에서 김기민이 두번 객연으로 호두를 깝니다. 23일 저녁은 국립의 베테랑 전효정과, 24일 저녁은 한예종의 무적 테크니션 채지영과 함께 합니다. 초라한 무대이긴 하지만 주역의 춤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한 공연입니다. 저렴한 가격은 덤. 근데 자리가 남아있을려나... 

by 효사도르 | 2009/12/14 17:38 | 발레 이야기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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