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후지사와 슈코 9단 별세...(거의 조훈현 9단 이야기)

후지사와 슈코
일본의 명예 기성(1기부터 6연패, 기성은 일본 최대 기전) 호방한 바둑 스타일과 성격, 기행으로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했던 바둑호랑이. 맨날 술에 쩔어 살았던데다가, 여러 공식행사에서 주사를 부린...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할 기인 ㅋㅋㅋㅋ 승부를 좋아하다보니, 경륜에 빠져서 수억엔의 빚을 지고, 자살까지 결심했던 -_- 남자...무엇보다도 조훈현 9단을 가장 사랑했던 실전 스승...

스승이면 스승이지 실전 스승은 모냐?
슬슬 썰을 풀어 봅니다.

아시다시피 이창호 9단은 지금은 약간 전성기를 벗어난 모습이지만, 말그대로 전세계 바둑의 극복 대상이자 바둑의 신이었죠. (특히 중국에서는 지금도 장난 아닙니다) 특히나 언론에 노출되는 모습도 너무나 구도자의 이상과 닮아있어서 더더욱 그랬습니다. 이창호 9단의 전성기때는 말그대로 한국바둑의 전성기였습니다. 국제기전은 한국 기사들이 개인전, 단체전 할것없이 도맡아서 번갈아가며 우승하는 실정이었죠. 빛나는 한국 바둑의 전성기!! 반면 지금은 중국세에 좀 밀린다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일본애들은 요즘 뭐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ㅋ

그런데, 한때 한국바둑은 중국과 일본에 완전 캐무시 당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중국은 말그대로 바둑의 종주국. 일본은 근대이후 현대 바둑을 정착시킨 바둑의 메카. 그 사이에 낀 한국은 뭐...그냥 중국와 일본이 지들끼리 중일 슈퍼대항전이라는 단체전을 만들어 세계 최강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다툽니다. 중일간의 슈퍼대항전이었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일본이 세계 최강이지 않나 하는것이었죠. 당시 떠오른 섭위평이 괴력을 발휘해서 일본의 9단들을 줄줄이 격파했지만 그 평가는 크게 바뀌진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짧은 바둑은 진검승부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이 찰나, 대만 출신의 응창기(잉창치)씨가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기전, 4년에 한번 열리는 바둑 올림픽 잉창치배를 만들게 됩니다.
40만달러였나? 하는 최고 금액을 가지고 각국의 대표들이 나와서 진검승부를 겨뤄보자...하는 거였죠. 근데 당시 그쪽 속내는 건방진 일본 9단들을 진검 승부로 박살내자 였다고 합니다. 중국인 섭위평을(혹은 임해봉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겠다....하지만 그 계획을 무너뜨린건 개무시 당하며 단한장의 출전권을 받아 필마단기로 출격한 조훈현 9단이었습니다.

한국대표로 출전했던 조훈현 9단은 당시 그닥 좋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국내에서의 절대강자였던것은 맞지만, 여기 저기 상처를 입었었죠. 이창호 9단이 슬슬 시동을 걸던 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내 전기전 석권이후, 좀더 큰 도전을 찾던 그에게는 본격적인 세계대회인 잉창치배가 실로 하늘이 준 기회였을 겁니다. 아무리 국내에서 날고 기어도, 메이저는 일본이었고, 그래서 크게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거든요. 또한명의 천재 조치훈이 일본 1위~3위 타이틀(기성, 명인, 본인방)을 모두 거머쥔 소위 대삼관을 하던 시기라서 더 그랬습니다. 당시엔 누구나 조치훈이 잘하나, 조훈현이 잘하나 하며 바둑을 잘모르는 사람들도 농담따먹기를 했었어요.
이건 뭐 증명할 길이 없으니;;;; 두 사람은 전성기때 진검승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벤트성으로 조-조 대결이 있긴했지만, 그거야 말그대로 이벤트일 뿐...하지만 일본최강 조치훈을 한국최강 조훈현보다 위로 보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더 많았던것 같습니다.

잉창치배로 돌아와서 중국세 반, 일본세 반, 대만...그리고 한국 한명...누구나 일본과 중국 기사들의 대결로 압축될것이다라고 예상하고 있는 찰나 단 한명이 한국을 거론합니다. 그가 바로 후지사와 슈코 9단입니다 (정말 오래 기다렸다;;;)

이유는? 한국은 조훈현 하나를 보유하고 있는것만으로 세계 3강이며, 조훈현은 충분히 우승 가능하다 라는 요지였습니다. 국내 바둑계에서도 감히 할수 없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조훈현의 막강한 실력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메이저였던 일본 바둑에도 통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랬든 저랬든간에 조훈현 9단은 고바야시 9단을 격파합니다. 고바야시 9단은 일본에서 조치훈 9단과 숙명의 라이벌이자, 당시 일본 최강자였습니다. 임해봉 9단을 격파합니다. 베어도 베어도 쓰러지지 않는 2중허리라는 별명을 가진, 오랜기간 정상의 위치에 있던 강자였습니다. 결승에서 드디어 섭위평 9단을 만났습니다. 섭위평 9단은 준결승에서 후지사와 9단을 이기고 올라왔으니, 여러모로 꼭 이겨야 하는 승부였습니다. 5판을 두는 5번기였는데, 세판을 우선 중국에서 두고, 나머지 두판을 제3국....인데 싱가폴;;; 에서 두는 아주 불리하기 짝이 없는 조건으로...당시 조훈현 9단은 여러모로 최악의 컨디션이었다고 합니다만.

아시는 바와 같이 결국 3-2로 섭위평 9단을 이기고 우승합니다. 한판한판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하는데, 과연 앞으로 바둑기전을 이렇게 생중계하는 이벤트가 또 있을지요...1회 잉창치배 조훈현 9단 우승!! 이때 아마 카퍼레이드도 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이 우승을 계기로, 한국은 바둑3강의 지위를 인정받게 됩니다. 이후 단체기전인 진로배등에서의 엄청난 성적이 뒷받침되어 있긴하지만, 조훈현9단의 잉창치배 우승은 정말 상징적인 사건이었죠. 이후, 2회 서봉수, 3회 유창혁, 4회 이창호등 한국 4인방이 줄줄이 잉창치배를 석권...결국 중국바둑 부흥을 위해 잉창치옹이 만든 꿈의 기전은 한국 바둑의 세계 정복의 밑거름이 되고 맙니다.

참 참 후지사와 슈코 9단 이야기를 좀더 해야겠네요;;;

조훈현 9단은 어린시절부터 말그대로 천재였습니다. 9살에 프로입단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좀 더 큰물에서 놀아보자며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당시 일본에는 세계 최대의 바둑도장이라고 할수 있는 기타니9단의 문하로 가기로 되어있었는데,
일본 바둑의 어른격이었던 세고에 9단이 조훈현의 바둑에 반해 자기 문하로 데려와 버립니다;;;; 문하라고 해봤자 조훈현 하나? 그래서 조훈현 9단은 상대적으로 외롭게 성장해야 했습니다. 조치훈 9단이 그때 기타니9단 문하에 들어가서 일본의 꼬마 천재들과 경쟁하고 있었죠...이지메 당하면서 -_- 이미 은퇴한 세고에 9단은 바둑의 실전적인 면보다는 바둑에 대한 자세나 품격을 전해주고자 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조훈현이 실제로 바둑을 많이 배운 상대가 바로 후지사와 9단이었습니다.

후지사와 9단은 호쾌하고 호방한 성격으로 젊은 기사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젊은 기사들과 아무런 형식 없이 그냥 접는 바둑판 펴들고 후다닥 연습 바둑을 두면서 실력을 쌓게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수많은 기라성같은 젊은 고수중에서 그가 가장 귀여워하고 아꼈던 것이 꼬마 조훈현, 이른바 쿤켄이었죠. 조9단의 빛나는 감각과 천재성을 실전적으로 갈고 닦아주었다고나 할까요...10분에 한판...지는 사람이 라면 사기...뭐 이런식으로 하루에도 몇십판을 두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래서, 조훈현 9단의 실력과 천재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조훈현 9단이 일본기원 소속으로 입단해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곧 병역 문제로 한국을 돌아왔을때에도 일본의 젊은 기사들에게 항상 쿤켄(조훈현)이 있는한 한국은 일본의 아래가 아니다 라고 항상 강조했다고 하죠. 조훈현 9단이 잉창치배에서 우승했을때, 누구보다도 기뻐했던 사람중 하나가 후지사와 9단이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술먹다가 조훈현 9단이 보고 싶다고 먹던 술병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그길로 비행기 타고 한국으로 날라온 꾸밈없고 호쾌한, 그야말로 일본인 답지않은 호인...

외국인 천재 꼬마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그 일본 노인이 결국 세상을 떴다는 소식에 가슴에 뭔가 찡한게 있어 한번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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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사도르 | 2009/06/12 20:18 | 이런 저런 것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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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정승문 at 2009/09/27 11:45
후지사와 슈코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던 도중 들르게 되었습니다.

멋진 글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by 최원철 at 2009/11/12 16:59
재미가 솔솔넘치는 훌륭한 글솜씨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흥미진진하게 잘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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